인텔 구원투수로 나선 美 정부 '경영권은 행사 안해'

 미국 정부가 인텔의 지분 10%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인텔 회생에 나섰다. 이번 조치는 칩스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른 79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국방부 지원금 30억 달러를 합친 109억 달러 일부를 지분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지분 10%는 현재 인텔 시장가치 기준 약 105억 달러(약 14조6천억 원)에 달하며, 미국 정부가 최대 주주로 등극할 수 있는 규모다.

 

이번 발표와 관련해 일본의 소프트뱅크 역시 인텔에 20억 달러(약 2조8천억 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소프트뱅크는 인텔 보통주 1차 발행을 통해 주식을 취득하며 약 2%의 지분을 확보해 인텔 상위 6번째 주주가 된다. 이번 투자는 주당 23달러로 이루어지며, 이는 18일 종가 23.66달러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소프트뱅크의 투자 발표 이후 도쿄 증시는 4% 하락 마감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는 인텔 지분 인수와 관련해 이사회 의석 요구나 칩 구매 약속 등 추가 조건은 붙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지분 전환 방식은 인텔이 정부로부터 받게 되는 보조금의 일부를 주식으로 바꾸는 형태로, 보조금은 인텔이 프로젝트 목표를 달성하는 단계별로 지급되도록 설계됐다. 또한 인텔이 미국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은 110억 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정부 지원은 인텔의 재무적 어려움을 일부 완화하는 동시에 전략적 산업 보호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인텔은 팻 겔싱어 전 CEO 시절부터 TSMC,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뒤처진 기술력으로 매출 정체와 손실 지속 문제를 겪어왔다. 지난해 인텔은 약 188억 달러(약 26조 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재정적 어려움을 드러냈다. 겔싱어의 후임 립부탄 CEO 역시 기술력 회복보다는 비용 절감과 일자리 감축 등 단기 실적 개선에 주력해 시장의 의구심을 불러왔다. 특히 인텔은 오하이오주에 계획했던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 건설을 여러 차례 연기하며 기술 투자와 생산 확대가 지연됐다.

 

한편, 이번 정부 지분 인수 방안 외에도 칩스법 관련 보조금을 받는 다른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분 전환 가능성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TSMC, 삼성전자 등 다른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해당 방안에 참여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칩스법 자금은 미국 내 투자 집행 단계별로 분할 지급되며, 직접 지원 자금의 85% 이상이 미국 내 투자에 사용되도록 계약되어 있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제정된 칩스법은 아시아로 이전된 미국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390억 달러 규모의 생산 보조금, 대출 및 세액 공제를 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TSMC와 인텔의 지분 일부 인수 방안, 아랍에미리트 투자 유치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또한 최근 엔비디아와 AMD가 중국 수출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 비율을 미국과 공유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일본제철의 US스틸 지분 매각을 승인하면서 전략적 ‘황금주’를 확보했다.

 

이번 정부 지원과 투자 발표 이후 인텔 주가는 미국 증시 개장 전 거래에서 5.6% 급등하며 25달러에 거래됐다.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와 소프트뱅크의 투자로 인텔의 단기 재무 상황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장기적 기술력 회복과 경쟁력 강화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인텔 간의 지분 투자 논의는 아직 최종 확정 단계가 아니며, 지분율과 구체적 조건은 추후 확정될 예정이다.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공식 발표 전까지 어떤 합의도 없다고 언급했다.

 

미 국방부도 유사한 방식으로 미국 내 희토류 생산업체 MP머티어리얼스의 우선주 지분 4억 달러를 인수, 해당 회사의 15%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 주주가 된 사례가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는 전략적 핵심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인텔 지분 인수 역시 국가적 반도체 전략과 산업 보호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조치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와 소프트뱅크의 투자가 인텔의 재정 안정에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 회복과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AI, HPC, 반도체 설계 경쟁에서 TSMC, 삼성전자 등과 격차를 좁히는 전략적 실행이 관건으로 꼽힌다. 미국 정부의 지분 인수와 보조금 지원은 인텔 회생의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으나, 기술력 회복과 생산 역량 강화 없이는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텔 지원 방안은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고 전략적 핵심 기술을 확보하려는 국가적 의지와 맞물린 결정으로 평가된다. 향후 정부와 민간 투자자의 참여 규모, 보조금 집행 방식, 인텔의 기술 혁신과 생산 계획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